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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는 기억한다, 내가 얼마나 나를 무겁게 했는지를

by HY83 2025. 4. 16.

허리 아픈 여성

 

허리는 몸의 중심이지만, 마음이 가장 먼저 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통증이 오는 날은 단지 육체의 무리가 아닌, 감정의 밀도가 높았던 순간이 축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허리 통증을 스트레칭이라는 수단으로 넘기지 않고, 내면을 돌보는 감각적 의식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몸과 마음, 둘 다 피곤했던 날을 위한 작은 환기.

고통은 느리게 쌓인다, 무심했던 순간들처럼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허리 뒤가 찢어질 듯 당긴다. 몸을 탓했다. 그런데 문득, 내가 멈추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물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않고, 숨을 들이쉬는 것도 잊은 채 오늘도, 어제도 그렇게 버텨왔다. 허리는 말이 없다. 그러나 무거운 삶의 중심을 가장 오래 기억한다. 그 침묵이 통증으로 바뀔 때, 우리는 겨우 신호를 알아차린다. 그 고통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했던 날들의 흔적이다.

움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돌보지 않아서 생긴 것

아침 햇살이 바닥을 긁고 있을 때,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허리를 누르지 않는다. 그저 숨을 따라, 천천히 기울일 뿐이다. 손이 무릎을 지나고 이마가 바닥을 향해 낮아진다. 바닥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이 나를 반긴다. 허리는 천천히 내려앉는다. 긴장을 놓고, 생각을 덜어내며 나는 '견디는 자세'에서 '풀어내는 자세'로 이동한다. 이 동작엔 이름이 없다. 그러나 내 몸은 안다. 이 루틴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몸이 말보다 앞서 반응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앉았다가도 허리가 찌릿했고, 가방을 들 때마다 무게가 배가 되어 돌아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단순히 자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허리에 감정을 숨겨두었다. 말하지 못한 일들, 내려놓지 못한 기대, 그런 것들이 쌓이면 결국 굽는 건 허리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하루 한 번, 내가 쌓은 무게를 내려놓는 시간을 만든다. 그건 스트레칭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다르고, 요가라고 하기엔 너무 개인적이다. 나는 그냥 바닥에 앉아, 숨을 느끼고, 내 몸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말하는지 귀 기울인다. 어떤 날은 왼쪽 골반이 유난히 타이트하다. 그건 늘 왼쪽에 가방을 메던 습관 때문일 수도 있고, 왼쪽으로 기대 잠드는 버릇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몸의 불균형에, 어느새 내 안의 마음의 쏠림까지 투영하고 있었다.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자주 한쪽으로만 기대곤 했다. 그 쏠림이 습관이 되고, 마음도 어느 한편에 치우쳐 내 중심이 점점 흐트러졌다는 걸 몸은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한 ‘스트레칭’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중심을 다시 조율하는, 작지만 정확한 의식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어디가 가장 단단하게 굳어 있니?” “무엇을 그렇게 오래 참아왔니?” 그러면 이상하게도 머리가 아니라 허리가 먼저 대답한다.

 

말은 하지 않지만, 긴장으로, 통증으로, 묵직한 감각으로. 허리가 아픈 날은 마음이 너무 오래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날이다. 그때 나는 한 걸음 느리게 움직이고, 걸음을 멈춰 벽에 손을 짚고 천천히 허리를 돌린다. 그 단순한 회전 동작 안에 나를 돌보고, 나를 다시 세우는 마음이 있다. 요즘 나는 벽이 고맙다.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쉬면 바로 지금 이곳에 내 몸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인식만으로도 허리는 조금씩 풀린다. 밤에는 조명을 낮추고, 조용한 음악을 틀고 바닥에 누워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안는다. 그 자세가 주는 안정감은 누군가에게 말없이 기대는 기분과 비슷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나를 안아주는 일은 왜 이렇게도 오랜만일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스스로를 가장 많이 외면하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몸은 안다. 그 누구보다 나에게 먼저 다정해야 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다시 허리를 펴고 앉는다. 그 자세 하나로 오늘의 긴장을 정리하고, 내일의 회복을 준비한다. 가끔은 무릎이 아프고, 가끔은 목이 더 뻣뻣하다. 그러면 그날은 허리가 아닌 다른 부위를 돌본다. 허리는 중심이지만, 몸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나는 몸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아프지 않게 매일 한 페이지씩 다정하게 넘기고 싶다.

통증은 몸의 반응이 아니라, 마음의 문장이다

허리는 곧고 단단한 줄 알았다. 하지만 가장 부드럽게 다뤄야 할 곳이었다. 무리한 자세, 참는 습관, 그리고 무심한 하루의 누적. 그것들이 켜켜이 쌓여 몸을 아프게 만들었고 지금 나는 조금씩, 그때 놓쳤던 나를 다시 만지고 있다. 스트레칭은 이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해하려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허리를 펴고 앉는다. 그 자세 하나가 말해준다. 나는 나를 더 이상 무겁게 만들지 않겠다고.